[스크랩] [서평]김상봉, 학벌사회 (한길사)
[학벌사회]는 저자도 시인했듯이, 강준만의 '서울대의 나라'의 연장선상에 있다. 강준만이 그랬듯, 우리사회가 학벌지향적으로 치닫는 원흉으로 서울대를 지목하고, 그 해체와 대안을 논의한다. '학벌'에 관한 최초의 본격적 연구서란 자부심을 내비치는 저자는, 스스로 학벌이란 개념이 모호함을 인정하면서, 대략 학연에 권력지향-독점이 더해진 형태로 정의하고 있다.
(저자도 꽤나 길게 설명하다시피) 서울대의 사회 요직 '점령'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 장차관, 고위공직자, 공기업 임원 등의 인원구성에서도 절반에 육박하거나, 과반에 이른다. 이러한 형태는 사기업이나 교수직, 전문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과반수가 넘고 일부 부문에서는 80%여에 이른다. 저자에 의하면, 이러한 현상의 조선시대에도 '사관'직의 벌렬가문의 독점 형태로 존재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제치하를 거치면서 교육이 출세와 권력획득의 수단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학벌이 가장 문제시되는 점은 바로 '권력'에 있다. 앞서 말했듯, 권력을 장악하다시피한 일부 '학벌'의 영향으로, 그 '학벌'에의 진입이 '권력' 획득에 접근하는 것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학벌의 교육적인 질은 도외시되고, '진입' 자체만이 지상목표가 된다.
개인의 다양한 욕구와 재능에 대한 배려가 미흡한 현 교육체제 하에서, 이는 성적경쟁으로 이어져 '성적이데올로기(성적지상주의)를 형성한다. 일선 교육현장에서도 성적만으로 학생을 판단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학생들 역시 성적에 의해 일희일비하고 또한 내적 성장과정마저 왜곡된다. 교육의 입시교육화로, 말과 생각의 능력을 배양하자는 전인교육은 자리를 잃어 버리고, 지나친 경쟁은 학생들로 하여금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게끔 한다. 시험의 획일성은 천재적 시험선수만을 양산하고, 학벌지상주의는 재능의 다양한 발산을 위한 실업교육을 무력화하여, 개성적 전문교육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다.
그 끝에 결정된 학벌은 개인 '정체성의 꼬리표'가 되고, '오직 어떤 학벌집단에 끈을 연결해서만 자기를 지탱할 수 있는 의존적인 존재의 자기의식'으로서의 학벌의식에 함몰된다고 주장한다.
학벌의 파괴력은 비단 상기한 부분만이 아니다. 교수사회의 학벌이기주의와 자기학벌 심기는 전국 교원의 과반수 이상을 특정 학벌로만 채우게 하고, 진정한 의미의 학문적 논쟁과 토론 문화를 싹부터 잘라버렸다(이명원, '현해탄 컴플렉스'의 예).
저자는 이렇듯 '학벌'의 폐해에 대한 대안을 여러가지로 제시한다. 그의 대안이란 대체로 '평준화'와 '독점 해체' 쪽으로 집중된다. 우선 대학을 평준화하는 것이다. 사교육비는 공교육의 부실이나 내실화와 상관 없다. 좋던 나쁘건 서울대 정원은 4000명 미만이다. 서울대가 존재하는 한 학벌은 해체될 수 없다. 따라서 우선 국-공립대만이라도 통합하고 나아가 사립대도 점진적으로 통합을 진행시킨다. 그리고 수능을 폐지하고, 자격시험제를 도입한다. 그러기 위해 서울대 학부를 한시적으로 폐지하고, 지방국립대생으로 채우는 방안, 그리고 서울대를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제안한다. 또 사립대는 점진적으로 정원을 줄이고 국립대는 늘려서, 결과적으로는 국립대로서 모든 대학을 통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진행된 '독점'의 해소를 위해서는, 공직선발시 지역별 할당제와 학벌별 할당제를 실시하고, 이를 확대하여 준공직영역 및 사기업에도 적용시킬 것을 주장한다.
더하여 대학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모두가 대학에 가야하고, 가려하는 세태도 문제지만, 결과적으로 학문적 소양-자질이 없는 학생이 대학에 너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여기에는 학문의 영역에 속한다 할 수 없는 영역들을 자기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전문대학이 설 땅을 없애고, 전문대학을 대학의 모방자로 전락시킨 대학도 큰 기여를 했다. 또한 그렇게 키워진 덩치로 전공간 분업이나 경쟁 없이 구태의연하게 자라온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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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몇 가지을 가진다. 규모 있는 출판사를 통해 짜임새 있고 보기 좋은 모양새로 출판되었다는 것이 그 하나요, (작가의 자부심처럼) '학벌'에 대한 정리와 많은 인용으로 내실을 어느 정도 담보했다는 것이 그 둘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한 부실한 논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우선은 선정성이다. 글 가운데에는 이러한 인용이 매우 많다.
[이를테면 당신이 서울대 출신이라 가정해보라. 그것은 청와대 수석비서들 거의 전부가, 행정부의 국무위원들 반 이상이, 그리고 국회의원의 1/3이 당신의 학교 친구 선후배라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대기업에 취직을 한다면 모든 부서에 없는 곳이 없이 당신의 선후배들이 있어서 밀고 당겨줄 것이다. 어쩌다 운 나쁘게 당신이 송사에 휘말린다면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의 최소한 절반 이상이 당신의 동문일 것이며, 당신이 혹시 외국에라도 나가게 된다면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어김없이 당신의 동문이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편리한 일인가?]
하며 선동한다. 그가 매우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홀로주체성'-'서로주체성' 등의 개념과 이론적 정리를 통해 정립한 주장의 객관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만다. 이 뿐 아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익명의 게시글(소위 악플이라할만한 저급한 글)을 가감없이 편집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언급하고, 그것을 자신의 정연한 논리로 파쇄하며 학벌을 공개처형한다. 순식간에 이들은 교육 비평준화 주장자들과 겹쳐지고, 나아가 조선시대의 노비제 옹호자, 아리안족을 찬양한 히틀러, 민족을 이간질한 일제와 동일선상에 놓여져야 할 '쓰레기'로 내몰린다. 이것이 근거가 되는가.
또한 지나치게 독일의 평준화 교육을 찬양하고 그 형태에 집착한다. 독일 교육이 얼마나 우수한 결과를 낳았는가, 세계의 유수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서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어떤 과정을 통해 정착되었는가에 대한 얘기는 없다. 그저 자신의 개인적 관찰과 경험에 의한 정보가 근거의 전부다. 미국이 겨우 몇 줄에 걸쳐 인용되기는 하지만, 사실 정보는 거의 없고 그저 비평준화 주장자들에 대한 비아냥거림을 위한 참고일 뿐이다.
게다가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듯한, 역사적-철학적 사실을 끌고 들어왔다. 조선시대의 교육제도나 실질적 통계를 간략하게 설명하지만, 그 근거는 밝히지 않고 있다. 또한 유교철학이 미친 파장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그는 조선시대의 교육-정치란, 개인을 도외시한 집단적 문화의 일환이라는 식으로 몰고 간다. 가족-국가로 확장되는 선상에서 개인은 없다는 식이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라는 부분을 인용한 듯하다. 하지만 이 4가지가 유교의 '8조목'의 일부란 것을, 그리고 크게는 3강령 8조목의 일부란 사실을 알기나 했는지 궁금하다. 8조목 중 5조목은 개인윤리를, 3조목은 사회윤리다. 참고로 8조목은 '격물 치지 정심 성의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로 이루어진다. 물론 해석에 따라 항목의 많고 적음은 중요치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 확대해석이건, 축소해석이건 명철한 논리가 있다면, 빼어나고 창의적인 것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외려 빰 맞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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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500여 페이지 가까이되는 분량을,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분야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고로 채우기는 어렵다. 더구나 실수와 허점을 내보이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과학자 뉴튼도 비판이 두려워 발표하지 않은 이론이 많았다고 하니,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책 전반에 걸쳐 중언부언하며 '홀로-서로 주체성'을 억지스레 이어 붙이고, 누가 봐도 쓰레기 같은 글을 반대파의 핵심 논조인 양 박살내며, 때로 감정-선동적인 사례까지 만들어 붙이는 것은 글 전체의 객관성을 크게 훼손하는 일이다.
저자의 '서울대' 비판은 부정적 사회현상에 대한 성찰로 시작했으되, 스스로의 감정을 추스리지 못한 '아마추어적 글쓰기'로 전락하기 쉬운 요소를 많이 지녔다. 그 덕(?)에 많은 설득력 있는 비판과 대안이 그저 울분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쉽다.